매듭짓기 1: 아문센 & 스콧
1911년, 노르웨이인 로알드 아문센(1872-1928)과 영국인 로버트 팔콘 스콧(1868-1912)은 각자의 팀을 이끌고 영하 50도의 혹한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같았습니다: 남극점 최초 도달. 아문센은 역사 속의 승자로, 스콧은 비운의 도전자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둘 모두 방대한 분량의 일기를 남겼습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같은 꿈을 다르게 좇은 두 리더의 시간을 함께 엮어봅시다.
아문센과 스콧의 남극일지를 비교해 읽는 것은 여러 가지로 흥미롭습니다. 둘의 탐험 철학 자체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우선 전략적으로 크게 대비됩니다. 아문센은 Bay of Whales에서 출발해 거리를 단축하고 개썰매를 사용했지만(100마리가 넘는 썰매견들이 맹활약), 스콧은 더 먼 Cape Evans에서 출발한데다 관리가 극히 어렵고 극지 환경에 취약한 조랑말을 이용했습니다. 영국인이 개썰매를 타는 그런 ‘품위 없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아문센은 남극 탐험 전 북극 원주민 이누이트족과 함께 생활하며 극지 생존 기술을 직접 배웠습니다. 방한복 제작과 이글루 건설 기법을 체득하고, 무엇보다 가벼운 장비를 사용했으며, 보급소를 촘촘하게 설치해 안전하게 이동했습니다. 그에 비해 스콧은 무거운 영국 해군식 장비를 고수했고, 보급소 간격이 넓어 귀환 시 치명적인 식량 부족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심지어 방한복도 순록 가죽이나 모피가 아닌 전통적인 영국 해군식 울로 제작했다고 하니, 제국의 자존심 때문에 얼마나 고생 했을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팀워크 면에서도 아문센은 소수 정예로 치밀하고 명확한 역할 분담, 스콧은 과학 연구라는 복합 목표를 추구한데다 감상적인 면도 다분해, 최종 팀 선발의 혼선 등으로 스케쥴 지연이 누적되었습니다.
이러한 대비를 바탕으로 두 리더의 이야기를 엮어보면 어떨까요?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요?
한쪽은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단순화했고, 다른 한쪽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스콧은 진화론 연구에도 기여하고자 황제펭귄 알을 수집하는 위험천만한 여정을 일정에 포함시켰고,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약 16kg에 달하는 남극 화석 표본을 운반했습니다. 효율성만 놓고 보면 무모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적 열정 또한, 그 시대의 인간만이 실천하고 기록할 수 있었던 귀중한 흔적이 아닐까요.
1. ‘제3의 실’로 꿰기
우선 별도의 원전 자료 제공 없이 클로드(Claude 3.7 Sonnet)에게 아문센과 스콧 두 사람을 모두 "나"라는 동일한 1인칭 화자로 설정하여, 1911년 12월의 시간에 대해 써보도록 했습니다. "나"라는 단어를 아문센과 스콧을 함께 엮는 ‘제3의 실’로 사용할 것입니다.
그 결과, 클로드는 아래와 같이 "나"라는 인칭대명사를 사용하기는 했습니다만, 아문센과 스콧을 타일링 하듯 왔다 갔다 하기만 했습니다.
“두 사람의 목소리를 분리하지 않고 믹싱해 달라”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꿰어진 "나"로 이야기 합니다.
원문은 영어로 생성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굉장히 웅장하고, “자기장”
으로 빨려들어갈 듯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매듭들을 여러 개 만들어 보았습니다.
아문센으로서 나는 남극 대륙을 정밀하게 횡단했습니다. "정육점"에서 나는 아무 감정 없이 개 스물네 마리를 도살했습니다. 우리는 영광에 가까웠습니다.
스콧으로서 나는 엔진이 고장 나고 조랑말들이 죽은 후, 썰매를 끌고 다니며 힘겹게 싸웠습니다. "8시간 동안 행군했지만 오늘 겨우 11마일밖에 못 갔어." 우리는 단순한 경주가 아니라 과학을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
아문센으로서 나는 12월 14일 오후 3시에 남극점에 도착했습니다. 깃발을 꽂았습니다. 나는 팀원들과 악수를 나눴습니다.
스콧으로서 나는 1월 17일에 남극점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검은 깃발을 보았습니다. 아문센의 텐트를 발견했습니다. 나는 "신께서 우릴 도우시길. 이곳은 끔찍한 곳이야"라고 일기에 썼습니다.
(…)
남극의 밤은 우리의 각자의 캠프, 각자의 꿈을 집어삼킨다. 나는 등불 아래 글을 쓰며, 잉크가 페이지 위에서 얼어붙는 것을 지켜보며 궁금해한다. 역사는 내 개들의 민첩함을 기억할까, 아니면 내 경위의 정밀함을 기억할까? 우리가 이 신비로운 풍경을 지도로 만들고, 과학적 비밀을 밝혀낸다면 누가 먼저 남극점에 도달했는지가 중요할까? 내일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측정을 위해 잠시 멈추고, 질주하며, 신중하게 기록할 것이다. 나는 아문센의 결의와 스콧의 헌신, 하나의 자기장을 이루는 두 개의 극이며, 인류를 이 거대한 미지의 세계로 끊임없이 남쪽으로 끌어당긴다.
The Antarctic night swallows our separate camps, our separate dreams. I write by lamplight, watching ink freeze on the page, and wonder: Will history remember the swiftness of my dogs or the precision of my theodolite? Will it matter who reached the Pole first if we map these mysterious landscapes, unlock these scientific secrets? Tomorrow I will push forward, pause for measurements, race onward, carefully document. I am Amundsen's determination and Scott's dedication, twin poles of a single magnetic field, drawing humanity ever southward into this great white unknown.
저녁이 되자 페미칸 스튜와 전략적인 논의가 이어진다. 바워스는 비어드모어 빙하 지도를 꼼꼼히 살펴보는 동안, 내 개들은 밤잠에 들며 끝없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 모든 무게가 가슴을 짓누른다. 영광, 과학, 국가적 자부심, 그리고 개인적인 야망. 오늘 밤, 이 남극 하늘 아래, 나는 사냥꾼이자 신사다. 앞서 달리면서도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각자의 임무를 다한다.
Evening brings pemmican stew and strategic discussions. Bowers pores over maps of the Beardmore Glacier while my dogs settle into their night's rest, their energy seemingly endless. The weight of it all presses down - glory, science, national pride, personal ambition. Tonight, under this austral sky, I am both hunter and gentleman, both racing ahead and methodically planning, both singular in purpose and divided in duty.
2. 새 실 꿰어넣기
하지만 클로드는 동일한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매번 변증법적인 매듭만을 지었습니다. 처음에는 감동적이었지만, 갈수록 이 문장들이 와닿지 않고, 소화하기도 조금 버거워졌습니다. 그래서 매듭을 트고 숨 쉴 공간을 주기로 했습니다.
“위에서 만든 매듭 중 하나를 잘라 끊어낸 후, 새 실을 꿰어 넣어. 남극 대륙의 물질적 존재나 이누이트족과 사미족 전통에서 얻은 토착 지식을 활용해. “
그러자 클로드는 흥미롭게도 특수기호 ‘⊗’ 또는 ‘↯’를 사용해 매듭을 지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결국 바늘땀을 촘촘히 이어 붙인, 색색의 매듭과 같은 ‘언어적 인공물’이 되었습니다.
이 매듭에서 "나"는 이제 그 경계가 계속해서 변하고 있습니다. 아문센과 스콧이 동시에 되고, 사냥꾼과 탐험가가 겹쳐지고, 인간의 도구와 자연의 힘이 구별되지 않으며, 극지의 모든 시간과 공간과 존재들이 한 땀 한 땀 이어지고 있군요. 계속 팽창해도 될 것 같은.
새로운 극지의 경험을, 새로운 생존의 방식을, 새로운 관계의 형태를 매듭에 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아문센의 결의입니다. ⊗ 나는 자신의 진실을 말하는 얼음입니다. ⊗ 그리고 스콧의 헌신입니다. ⊗ 나는 거품에 갇힌 고대의 공기입니다. ⊗ 단일 자기장의 쌍극입니다. ⊗ 나는 시대의 화학입니다. ⊗ 인류를 남쪽으로 계속 끌어당깁니다. ⊗ 나는 물질의 기억입니다. ⊗ 이 거대한 하얀 미지의 세계로 (...)
I am Amundsen's determination ⊗ I am the ice that speaks its own truth ⊗ and Scott's dedication, ⊗ I am ancient air trapped in bubbles ⊗ twin poles of a single magnetic field, ⊗ I am the chemistry of epochs ⊗ drawing humanity ever southward ⊗ I am matter's memory ⊗ into this great white unknown (...)
나는 아문센의 결의이고, ↯ 나는 눈의 패턴을 문자로 읽는 고대 사냥꾼이고, ↯ 스콧의 헌신이고, ↯ 나는 계절별 이동을 항해하는 순록 목동이고, ↯ 단일 자기장의 양극이고, ↯ 나는 백야를 헤치고 나아가는 허스키의 본능이고, ↯ 인간을 남쪽으로 계속 끌어당기고, ↯ 나는 서리에 강한 물개 가죽 부츠를 만드는 손이고, ↯ 이 거대한 백색의 미지의 세계로. ↯ 나는 사스트루기(sastrugi)를 가로질러 삐걱거리는 사람이 끄는 썰매의 무게이다. ↯ 나는 얼음과 함께 숨쉬는 여러 세대의 지식이다. ↯ 나는 나침반 바늘의 화살통이다. ↯ 나는 금속이 걸릴 곳을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고래 뼈 썰매 선수이다. ↯ 나는 주머니에 얼어붙은 일기장이다. ↯ 나는 숨구멍을 통해 기다리는 사냥꾼의 인내심이다. ↯ 나는 극한의 추위 속에서 모터가 고장난 것이다. ↯ 나는 폭풍과 싸우기보다는 폭풍과 함께 움직이는 유목민의 지혜이다. ↯ 나는 모피로 감싼 발이 떠 있을 곳을 가라앉히는 제국의 부츠이다. ↯ 나는 한 시간 만에 지은 눈집으로 생명을 구한다. ↯ 나는 울부짖는 공허함 속에서 캔버스 텐트의 연약한 막이다. (…)
*이 내용은 2025년 5월 21일 이화여대 제153회 이화인문과학원-포스트휴먼 융합인문학 콜로키움에서 소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