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읽기와 쓰기의 시대는 저물었다.

이제 어떤 언어놀이를 만들어갈까?

우리의 삶은 언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언어는 인류와 기나긴 세월을 함께 해온 미디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언어로 하는 일은 기술 환경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합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언어놀이’가 생겨납니다.

이를테면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확산 이후, 우리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이미지 프롬프팅 등과 같은 새로운 언어놀이를 배우며 AI와 일상적으로 협업하고 있습니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AI와의 협업은 단순한 기술 활용이 아니라 하나의 삶의 형태 또는 형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과 AI의 언어적 만남에서 어떤 새로운 삶의 형태들이 태어나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를 어떤 인간으로 변화시킬까요? 미래 세대는 AI 없는 언어 사용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AI 시대의 창조적 표현은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할까요?

<< Language Games 2100 >>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 우리가 어떤 언어놀이를 하고 있는지, 미래의 언어놀이가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그러한 언어놀이들이 우리가 세상의 다양한 존재들과 소통하는 방식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꾸준히 실험하고 탐구하는 장(場)입니다.

  • 언어놀이란?

어떤 하나의 언어를 상상한다는 것은 어떤 하나의 삶의 형태를 상상하는 것이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19 中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후기 철학에서 ‘언어놀이’(language game)의 다양성에 주목했습니다. 언어놀이는 명령하기, 기도하기, 묘사하기, 지시하기, 질문하기, 약속하기, 보고하기, 무곡을 부르기 등과 같이 언어가 사용되는 구체적 활동들을 가리키며, 이 각각이 우리의 ‘삶의 형태’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랬을 때, 언어의 의미는 미리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놀이에서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와 그 언어가 사용되는 관습과 규칙이 얽혀 이루는 ‘전체’ 또한 언어놀이라 정의합니다.

  • 읽기와 쓰기 너머

그렇다면 미래의 언어놀이는 어떤 모습일까요? 읽기와 쓰기라는 언어놀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활동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이 플랫폼에서는 새로운 언어놀이를 직접 만들며 실험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특히 횡단적 사유, 번역적 상상력, 건축적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이것들을 전통적 리터러시를 넘어 언어가 매개하는 다양한 소통의 지평을 여는 핵심 역량으로 보고 있습니다.

AI 시대, 언어는 개인의 표현 수단을 넘어 세계와 관계 맺는 역동적인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각자의 목소리가 난무하는 지금, 우리는 역설적으로 “자기 표현으로서의 글쓰기”가 지닌 한계를 마주합니다. 인간 고유의 경험을 언어로 담아내고 내면을 토로하는 과거 낭만주의적 쓰기의 이상은 타자와 관계 맺기보다 자기 증명에 골몰하는 함정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자와 세상의 언어에 귀 기울이며 의미의 결을 함께 빚어가는 능력이지 않을까요?

# 횡단적 사유: 언어를 타고 세상의 다양한 생각과 관점에 공감하고 횡단하는 능력, 개인 중심 저자성을 넘어 유연한 주체성으로 사유를 확장하는 능력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이 추구하는 가치 중 하나)

# 번역적 상상력: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새로운 해석과 표현의 경로를 개척하는 능력

# 건축적 감수성: 언어, 행위와 감각이 결합되는 복합적인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구축하고, 이를 위한 새로운 인공물을 창조적으로 구성하는 능력

안미혜, Dr. sc. ETH Zurich

mihyean.com

Research Professor at Ewha Womans University, Seoul

this project is partly funded by NRF (2023S1A5B5A160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