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용사로 집짓기
서울특별시 송파구 문정고등학교 학생 24명이 3인 1조로 AI를 건축 컨설턴트로 삼아 가상의 집을 짓기로 했습니다. 이들은 우선 세 개의 형용사로 자신들이 일년 간 함께 살고 싶은 집을 묘사했는데…
“우리는 어떤 집을 원하나?” (3인 1조)
2025년 11월 21일 문정고등학교에서 실시된 이 워크숍은 교내 건축 동아리와 컴퓨터 동아리 학생 총 24 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집의 중요성에 대한 짧은 강의로 시작하였습니다. 집이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인간의 신체, 정서, 인지 구조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지를 다루었습니다. 특히 『집은 우리를 어떻게 인간으로 만들었는가』 (2019)에서 신경인류학자 존 S. 앨런(John S. Allen)이 펼치는 논의를 참고하여, 집을 몸과 마음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환경으로 조명하였습니다. 이어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공간의 시학』 (1957) 을 바탕으로, 집 내부의 공간들이 지니는 상징적·심리적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본격적인 워크숍을 시작하였습니다. 학생들은 3인 1조로 팀을 이루어, 1년 동안 함께 살 집의 ‘느낌’을 상상하고 이를 세 가지 형용사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때 너무 익숙한 표현에 머무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 ‘편안한’, ‘아늑한’, ‘따뜻한’이라는 형용사는 의도적으로 사용을 제한하였습니다.
각 조는 토론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집의 분위기와 성격을 정리하고, 이를 세 가지 형용사로 압축하였습니다. 집의 형태나 기능 이전에 ‘어떤 삶을 담을 것인가’를 질문하도록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형용사에 따라 조별 성격이 확연히 드러나는 시간이었습니다.
2. 집의 형태 추첨
그다음으로 두 번째 단계에서는 주거 형태가 삶의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하기 위해, 각 조가 추첨을 통해 특정한 집의 유형을 배정받았습니다. 제시된 유형은 동굴주거, 이글루, 한옥, 코티지, 벌집형 움막, 농가주택, 트룰로(trullo) 등으로, 서로 다른 기후와 구조적 조건을 반영하는 사례들로 구성되었습니다.
학생들은 무작위로 주어진 주거 형태를 바탕으로, 앞선 단계에서 도출한 세 가지 형용사에 부합하는 집을 상상했습니다. 이때 집의 형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해당 주거가 어디에 위치하 는지를 함께 설정하도록 하여, 공간과 환경의 관계를 동시에 고려했습니다. 예를 들어 산토리니의 절벽 위, 에베레스트 산맥과 같은 극한의 자연환경, 혹은 강원도의 농가와 같이, 집이 놓일 장소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3. 집짓기
앞서 설정한 집의 형태와 위치, 그리고 세 가지 형용사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집짓기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과정은 특정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자유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일부 학생들은 종이에 직접 스케치를 한 뒤 이를 언어로 설명했고, 다른 조는 처음부터 ChatGPT나 Gemini와의 대화를 통해 아이디어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집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단계적으로 고려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각 조는 이 집에서 이루어질 공동주거의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았습니다. 학생들은 애초에 스스로 제시한 세 가지 형용사와, 추첨을 통해 주어진 구체적인 집의 형태가 서로 모순되지 않고 하나의 개념으로 성립하도록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왜 이러한 공간 구성과 생활 방식이 해당 형용사와 주거 유형에 부합하는지를 조율하는 과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조별로 완성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대부분의 조가 제한된 시간 안에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해 낸 것 같습니다. 굉장히 짧은 시간 동안 건축적인 아이디어를 디테일하게 시각화 했습니다. 생성형 AI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집의 구조와 그 집에서의 생활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학생들이 꽤 신기한 집들을 디자인해서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짐바브웨의 폭포 후면 공간에 지은 특이한 한옥(형용사: ‘어두운’, ‘차분한’, ‘생동감 있는), 마인크래프트에서 영감을 받은 다층 이글루 디자인(‘깔끔한’, ‘개인적인’, ‘넓직한’)이 기억에 남습니다.
4. 이 집에서의 하루: 거주자의 일기
마지막 단계로 계획된 이 부분은 수업 시간 제약(2시간)으로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이 자신이 설계한 집의 거주자가 되어 하루를 서술하며 공간 경험을 구체화하는 과제였으나, 향후 수업에서 해보면 좋은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