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과 시 접기
이번에는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 한 구절을 드노보 단백질(de novo protein)인 9EXK와 함께 AlphaFold에 입력해, 조금 더 복잡하게 접힌 형태의 구체시를 쓰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접힌 시’의 저자는 누구일까요? 블레이크? 드 노보 단백질(인공 단백질)을 디자인한 과학자들? AlphaFold? 이 실험을 기획한 저 자신? 아니면 이 모두?
시를 아미노산 서열로 변환하기
이번에는 조금 더 복잡한 구조를 만드는 데 주력했습니다. 텍스트를 살아있는 박테리아에 이식하거나 인코딩하는 작업으로 유명한 캐나다 시인 크리스타안 보크(Christian Bök)의 ‘제노텍스트(The Xenotext)’ 작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물론 보크가 ‘살아있는 시’를 구현하기 위해 쏟아부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지극히 소박한 스케치 수준의 실험입니다.
우선 윌리엄 블레이크의 1794년 시 《호랑이》(The Tiger 또는 The Tyger) 중 첫 4행을 접기에 사용할 구절로 골랐습니다. 이 시는 호랑이의 기원과 창조 과정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내용을 포함합니다.
Tiger Tiger, burning bright
In the forests of the night
What immortal hand or eye
Could frame thy fearful symmetry?
(…)
— William Blake, The Tyger (1794)
이 행들을 아미노산의 언어로 인코딩하기 위해, B를 “LL”로, O를 “GG”로, U를 “LG”로, 공백을 “WW”로, 쉼표를 “EE”로, 물음표를 “AA”로 대체했습니다. 단백질에서 가장 풍부하게 발견되는 “L”(류신)과 “G”(글리신) 위주로 대체한 것입니다.
TIGEREEWTIGEREE(…)LWWSYMMTRYAA
2. AlphaFold에서 단백질과 결합하기
아미노산 서열로 변환한 블레이크의 시구는 이제 단백질과 만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선택한 파트너는 9EXK라는 특별한 단백질입니다. 9EXK는 자연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 머신러닝 알고리즘의 ‘환각(hallucination)’에 기반해 설계된 인공 단백질입니다. 그리고 이런 인공 단백질을 ‘드노보 단백질’(de novo protein)이라고 합니다. 총 1,070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이 단백질은, 다양한 분자와 결합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 이 실험의 파트너로 적합했습니다.
>9EXK_1|Chain A|De novo designed protein K12|synthetic construct (32630)
MSGAVYFLLLDLRAEVDEEIAWARRLGLDDLVAALEAVRALIEGALATLESADFDYLEFTQRLADALSSLVRVYDDLIARLEEQPATTLRRAYRILLEYRRKEVRELLEAVQELRDVLETLERLSRRLGRPDFAGWLVSFVLDHYGELVAPDILTNPAKGFRALAHLLRAFLYVLLALKLRSPDEELREEARRAVAFLYGEEFVKAHSDEELAELLLERAREAILEAARYNSALREEFDAAGGPEGREAWLERQLLRLRGLVERFLELWENSELRAGPDGELVAVPGVKGLEIIKKLLEEGKGVNLALWTLGRLLRALDLSPEARAAYEAALEALRRARLQLQYVQSERYEGSDRERAEAIRAAFETIRAAAETIRAVIEADTSLPAELKAAYIEVIYAYLLQVAREVRDALWRLAEEILPEYIEKFFKGSEEEQRLTLYELLRALGEDYFFLDLEKEGYSEEELRELFRNAKLEVINADESGKIKLYNLILDAKKLNRKVLIKITLTELSEGSYIITIEVFKSPDAEIPEYEIRVAAVGATSEEILKYLEELKEKAKEGELIRELLLLYVDRQIAELEEKVANADKIDPVVARLAIEEARARGEELTEADVIEGTRAGYQAALDVLRRIKAELEKEKSPENPFYQFYDKLTEKLKEKGFVSEEEAFEIARETFGFPADLPPLAAAALRDFASTVLTILEIFKTAEDFSKWYKENKEKLIELAGLSEEELDKIVRKTLTLLLEALARSVFGSKLGRELLNEALGTFIKELLESFFRTHYGLTRGDAVIDFDAKTGILSLRFTPRAYARIRVKEYRDPSLGEKFDNLLDVLSSNPSLKGQVDRLRVSYAFGTPVGTTPALRDATAEDLETDPRLKRHRDFIEEVENLYAELLIRLEEALKDEPETVEILTEIIGRHLKEVIHDPDVINALLDRRDLSPEEFAARARAVLDEIIAEEKKLQEKLLEAVEDNPEAKKIVEEIFPKIIATIERYREWPERELAGLPLGGSHHHHHH그렇게 두 서열을 AlphaFold Server에 입력하면, AI는 두 사슬이 서로 어떻게 끌어당기고 감쌀지에 대한 확률을 계산하여 3차원 결함 구조를 예측합니다. 그렇게 AlphaFold가 생성한 CIF(결정학 정보 파일)을 UCSF ChimeraX라는 소프트웨어로 후처리하여 보니, 아주 멋지게 접혀 들어갔군요. 아래 이미지에서 흰색 구조물이 9EXK, 나머지 접혀 들어간 부분이 블레이크의 호랑이입니다.
3. 접힌 시를 인공물로 번역하기
블레이크의 시구가 단백질과 만나 만들어낸 이 구조는, 이제 카펫으로 짜이거나 암석처럼 성형되어 실레로 손에 쥘 수 있는 오브젝트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의 언어가 분자의 형태를 거쳐 마침내 물질이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AlphaFold가 서로 전혀 다른 언어적 영역(시어와 단백질 서열)을 잇는 생성적 행위자(generative agency)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다시 말해, 자연어와 깊이 상호작용하는 AI 모델이라면 어떤 것이든 본래의 기능을 넘어 새로운 생성 인프라로 재구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이렇게 접은 시, 그리고 사변적 인공물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깁니다. 이 시와 인공물의 저자는 누구인가? 블레이크의 언어, 단백질을 설계한 과학자, AlphaFold의 예측, 그리고 이 번역을 기획한 연구자가 모두 하나의 작업 안에 공존하는가? ‘개인’의 창작이라는 개념은 이 복잡한 행위자들의 네트워크 속에 녹아 사라지고, 그 자리에 언어와 물질,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언어 게임'의 가능성이 펼쳐지지는 않는가?
*이 작업은 2025년 5월 27일 서울에서 개최된 the 30th ISEA (International Symposium on Electronic/Emerging Art), Academic Conference에서 발표한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 An, Mihye. 2025. Concrete writing with proteins. Proceedings of 30th International Symposium on Electronic/Emerging Art (ISEA2025), 260-267.